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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이재민 트라우마의 이침치료 의료지원(2)
작성자
김상호
홈페이지
http://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6993
작성일
2019-11-05
조회
32




진료 D+21 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재민 분들이 식당에 나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TV를 보고 계셨다. 비록 지진으로 보금자리를 잃게 되셨지만 남은 어르신들이 이렇게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삭막한 아파트생활이 줄 수 없는 시간과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하루빨리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대피소를 떠나셔야겠지만 함께 보는 TV,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다. 지진의 트라우마를 견뎌내기 위해서 서로 더욱 가까이 의지하고 계신다. 체육관 바깥에 나오니 공기가 상쾌하다. 시원한 밤하늘 구름 속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얼굴을 내민다. 어둠 속에 만나는 달빛, 그리고 이재민 분들의 따뜻한 모습에 내 마음까지 은은하게 밝아진다.





진료 D+28 일

“모두가 함께합니다…포항 힘내세요”

한 이재민의 텐트 옆을 지나다 텐트 위에 놓인 신문을 발견했다. 지진발생 3일 후인 2017년 11월18일자 신문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지진의 상처는 계속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2년 후에도 무려 15만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2년이면 군대도 제대하는데…이제 조금만 있으면 2년을 넘기고 제대할 거라...” 한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신다. 이런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렇게나 긴 대피소 생활을 버텨내기 힘들 것이다. 당장 문제를 해결해드릴 수 없어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할지 마음이 착잡했다. 





진료 D+35 일

오늘은 마지막 진료 때 지진발생 이후 화병, 잘 놀람, 어지럼증, 불면을 호소하시는 60대 초반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됐다. 

“지진날 때 뒷산에 있었는데 산이 흔들렸다. 산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진 이후 조금 흔들리면 지진인가, 좀 큰 소리를 들으면 여진인가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트라우마 증세는 안 없어진다. 빌딩 고층에서 화장실 가면 흔들거림이 느껴진다. 시에서 임대주택을 지원해주지 않고 1년 반이 되어가도록 계속 대피소 생활을 하니 화가 난다. 대피소에서 매끼 잘 먹긴 하지만 뭔가 결핍된 느낌이다. 아무래도 안정된 생활이 아니다보니까… 그래도 대피소 생활은 옛날 시골 골목에서 같이 사는 느낌이다. 오기 전에는 스치면서 이웃 간에도 잘 모르는데 여기 와서야 옆집이 그랬구나하고 서로 사정을 많이 알게 됐다. 시골 동네 공동체처럼…”

이야기를 들으며 이재민들에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게 되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 더 필요한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진료 D+44 일

오늘 마지막에 진료한 분은 고향이 전라도셨다. 서울에서 포항으로 내려 오신지도 벌써 30여 년 전이다. 화병이나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이나 어지럼증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만 흔들리면 또 여진인가하며 불안해진다. 이 트라우마 후유증은 벌써 시간이 일년 반이 훨씬 넘었는데도 안 없어진다고 한다. 이전에는 취미생활도 하고 산에도 다니고 활동을 했는데 이재민이 되어 체육관 대피소 생활을 하면서는 아무 것도 하기 싫단다. 그냥 여기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비좁은 텐트가 어느새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신기하단다. 처음 지진 때는 이 작은 텐트도 감지덕지였다. 주민들이 불안해서 서로 여기 들어오려고 했다. 텐트에서 남편과 둘이 잤다는 게 지금은 새삼스럽다. 지금은 텐트 두 개를 붙여서 자서 다행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짠했다. 가끔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파트로 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집은 불안하다고 한다. 





진료 D+59 일

저녁 7시 다시 가운을 입고 진료준비를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진료는 병원이 아닌 체육관이다. 식사를 마치고 한분씩 모였다. 오늘 내내 다들 집단 속에 정신이 없으셨단다. 오늘부터 장맛비가 시작됐는데 비가 오면  지진으로 갈라진 벽 틈으로 비가 새기 때문이다. 그나마 바람이 들이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비가 똑바로 내리면 그나마 나은데 바람이 불면 비가 옆으로 들이쳐서 틈으로 물이 더 많이 샌다고 한다. 작년 태풍 땐 집이 완전 물바다가 됐고 맨션 지하실까지 물에 잠겼다…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텐트에 근심걱정으로 더욱 무거운 몸을 뉘였을 이재민 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 걱정 없는 집에 편히 누우니 감사했고 또 미안했다. 눈을 감고 비가와도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기길 기도했다.




한의재난의료팀에게 보내는 편지

8주간의 이침치료 후 치료 전후 작성한 설문지를 살펴본 결과 지진 이후 장기간의 대피소 생활로 인한 이재민들의 트라우마 증상과 우울증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불면, 분노표현, 삶의 질 등이 호전됐다. 특히 이침치료는 시술이 간편하며 환자들이 부착한 이침을 매우 잘 유지해서 치료순응도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침치료와 관련된 귀부위의 감염증 발생이나 치료와 관련해 호소하는 부작용은 없었다. 현재까지 재난으로 발생한 장기이재민에 대해 이침을 적용한 보고는 없었기에 본 의료지원의 결과는 향후 재난으로 이재민 발생 시 국가보건 차원에서 이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재난상황 발생 시 의료지원을 시행할 때 사명감과 헌신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봉사를 베푼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의료지원은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 재난의료에 대한 기본지식과 이재민들의 상황과 고통을 충분히 파악한 후 사용할 수 있는 의료지원의 방법과 목표, 기간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의료지원에서 모든 이재민들에게 동일한 치료 프로토콜을 사용했는데 향후 환자의 다양한 호소 증상과 연령별 취약점을 고려해 치료 프로토콜을 세분화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침치료 외에 한약, 전자뜸, 부항 등 다른 한의치료와 어떻게 결합해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최근 한의계 최초로 신의료기술로 등재된 감정자유기법(EFT)은 PTSD 치료에 효과적이며 시술이 간단하고 안전한 치료기법이다. 많은 한의사들이 EFT를 배우고 임상에서 활용해 향후 재난발생시 의료지원에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바탕으로 재난의료지원에 가이드라인이 될 ‘한의재난의료지원 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다. 타 전문가와 소통해 국가 재난의료의 큰 체계 안에서 한의치료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증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료지원의 성공과 지속을 위해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지진 같은 대형재난은 쉽게 회복되지 않으므로 장기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재난발생 지역을 잘 이해하고 그 지역의 주민인 한의사들이 누구보다 해당 지역 재난에 최적의 의료지원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주인공일 것이다. 또한 이들을 돕고 교육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양성되어야 할 것이다. 각 지역별 한의재난의료지원팀이 만들어 향후 국가적 재난 트라우마 치유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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